광고역사 한국 근현대 광고를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한국광고박물관

한국에 근대 광고가 도입된 것은 1876년 강화조약 체결과 함께 서구문물이 들어오면서 신문이 발행되고 광고도 등장했다. 한국 최초의 근대 광고는 1886년 2월 22일 자 제4호에 게재되었다. 그 뒤 현재까지 1세기를 넘는 기간의 한국 광고는 크게 해방 이전 2개, 해방 이후 5개, 모두 7개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개항에서 1910년 한일합병 때까지가 첫 시기이고, 그 다음 시기는 1945년 광복까지다. 1910년부터 10년간은 일제 무단정치 시기인데 우리말 신문이라고는 조선총독부 기관지 하나뿐이었다. 1919년 3.1독립운동 이후 이른바 일제의 문화정치로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광고는 번창했다. 그러다가 1940년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강제 폐간되며 광고가 쇠퇴하기 시작하다 1945년 일제 패망에 이르러 광고가 거의 사라졌다.

광복 이후는 5개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해방에서 1968년까지인데 우리말 신문이 나오고 민간상업방송이 시작된 시기이다. 둘째 시기는 1968년에서 1980년까지인데 이 10여 년 사이에 한국 광고는 급성장을 했으며 광고회사가 자리를 굳힌 시기이다. 셋째 시기에는 1980년에서 1988년으로 언론통폐합이 있었고 컬러 TV가 등장했다. 넷째 시기는 88 서울 올림픽에서 1995년까지로 언론자유의 회복에 따라 언론의 수가 폭증하고 아울러 광고도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마지막 시기는 1995년 한국에서 인터넷이 상용화된 시기부터 현재까지인데 정보기술(IT)과 뉴미디어의 등장이 매체와 광고를 포함한 마케팅 그리고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개화기-광고 도입기. 1886-1910

1883년 11월 20일 자 한성순보 제3호 회사설(會社設)에 <광고>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고 3년 뒤에 세창양행의 광고가 최초로 한성주보에 실렸다. 그 후 광고는 급속히 발전해서 신문, 잡지, 전봇대, 전차, 간판이 광고 매체로 이용 되었고 할인판매. 통신판매, 현상광고 등 광고 방법도 다양해졌다. 활자만으로 된 광고에 테두리 장식, 일러스트레이션, 검은 바탕에 흰 글자, 옆으로 누인 광고, 거꾸로 세운 광고 등 표현이 다양해지고 광고 카피도 점차 전문성을 띄게 되었다. 1906년에는 일본전보통신사가 광고대행업을 시작했고 1910년에는 한국인이경영하는 광고회사가 생겼다.

  • 1886 - 독립신문1886 - 독립신문
  • 1904 - 대한매일신보1904 - 대한매일신보
  • 1908 - 소년1908 - 소년
  • 1914 - 담배광고1914 - 담배광고
 

일제시대 - 광고의 성장과 쇠퇴기. 1910-1945

광고의 입장에서는 이 기간을 3개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가 1910년 한일합병 이후 1919년3.1 독립운동까지 무단정치 시기로 언론 통제가 심했던 어두운 시기였다. 광고는 계속되었으나 광고제도는 일본식으로 바뀌었다. 둘째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한국인에게 신문 발행을 허가한 시기로 1940년 이 두 신문이 강제 폐간되기까지 약 20년간 일본광고가 절반을 차지했다. 1920년대 중반부터는 신문이 8면으로 증가했고 1930년대 중반에는 12면까지 증가했는데 광고가 늘었기 때문이다. 신문사가 주최하는 광고상, 광고강좌, 광고 해설 기사 등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으며 연희전문 상과(商科)에서는 광고 강의를 했었다. 셋째 시기는 광고 쇠퇴기이다. 태평양전쟁의 영향으로 광고는 심한 통제를 받았고 신문지면도 2면으로 줄었다. 민간회사가 전쟁 선전광고비를 부담하기도 했다. 상업광고는 거의 사라졌다.

  • 1922 - 그룹 및 기업광고1922 - 그룹 및
    기업광고
  • 1926 - 그룹 및 기업광고1926 - 그룹 및
    기업광고
  • 1935 - 가정용 전기전차1935 - 가정용
    전기전차
  • 1945 - 문림사서점1945 - 문림사서점
 

광복, 광고 복구, 민간상업방송의 정착. 1945-1968

광복으로 국권을 찾았고 우리말을 찾기는 했으나 남북분단, 3년간의 한국전쟁은 광고에도 치명적이었다. 신문은 하루에 고작 4면이 발행되었으며 광고할 제품도 의약품과 영화 이외에는 거의 없었다.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한국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고 1960년대 초부터여러 민간상업방송이 등장하면서 광고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 1956 - 화장품 및 보건용품1956 - 화장품 및 보건용품
  • 1957 - 화장품 및 보건용품1957 - 화장품 및
    보건용품
  • 1935 - 가정용 전기전차1962 - 화장품 및
    보건용품
  • 1968 - 식품1968 - 식품
 

<한강의 기적>, 광고의 급성장, 현대적 광고의 정착. 1968-1980

60년대 말 광고대행업이 신종 산업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TV 보급은 가구 대비 2%에서 80%로 폭증하면서 사치품에서 필수품이 되었다. 따라서 TV는 강력한 광고매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100억 원도 안 되던 광고비가 2,186억 원으로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광고회사가 광고의 주축이 되는 시대로 바뀌었으며 광고단체와 시장조사회사가 생기고, TV광고 감독이 등장했다. 매체사가 주최하는 광고상이 제정되고 일본의 ACC, 미국 CLIO 광고상이 소개되었다. 대학에는 광고전공학과가 생겼다. 70년대에는 신문에 컬러광고가 등장했다. 광고주, 매체, 광고회사의 3자가 광고산업을 구성하는 현대적 광고시대로 정착한 시기였다.

  • 1970 - 화장품 및 보건용품1970 - 화장품 및
    보건용품
  • 1974 - 패션1974 - 패션
  • 1978 - 그룹 및 기업광고1978 - 그룹 및
    기업광고
  • 1977 - 그룹 및 기업광고1977 - 그룹 및
    기업광고
 

언론통폐합, TV 컬러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창립. 1980-1988

제5공화국이 탄생하면서 언론기본법이 제정되고 언론이 통폐합되었다. 민간방송은 공영화되고 1981년에는 TV가 컬러화되었다. 그리고 모든 방송광고 판매를 대행하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설립되었다. 신문은 하루 8쪽에서 12쪽 발행으로 증가했다. 한국 광고비는 국민총생산의 1% 선에 이르는 선진국형이 되었고 아시아에서 일본다음으로 큰 광고비 보유국이 되었다. 한국 광고시장 개방에 대한 압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1980 - 그룹 및기업광고1980 - 그룹 및
    기업광고
  • 1984 - 새우깡1984 - 새우깡
  • 1986 - 프로스펙트1986 - 프로스펙트
  • 1977 - 그룹 및 기업광고1986 - 관공서 및
    단체
 

개방 시대. 1988-1995

1987년 언론기본법이 폐기되면서 1988년 이후 일간신문의 수는 2배, 3배로 늘었다.신문 발행 면수의 제한도 풀렸으며 민간방송이 부활했다.1991년에는 한국 광고시장이 개방되었다. 한국은 세계 10대 광고비 보유국이 되었다.

  • 1995 - 삼성전자1995 - 삼성전자
  • 1996 - LG그룹1996 - LG그룹
  • 1997 - 비전코리아1997 - 비전코리아
  • 1999 - 범양식품(주)1999 - 범양식품(주)
 

인터넷, IT의 뉴미디어 시대. 1995 이후

1995년부터 인터넷이 상용화되면서 IT(정보통신) 시대가 열리고 뉴미디어시대가 왔다. 매체는 물론 마케팅과 광고, 광고 표현까지도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1998년 한국은 IMF를 맞으면서 광고시장도 큰 타격을 받았다. 당시 한국 광고시장은 전년 대비 35%나 줄었다가 다시 회복되었지만 성장을 계속하던 광고시장은 90년대 말부터 저 성장기로 접어들었다. 현재 한국광고의 시장 규모는 2007년 기준 8조원 대로 세계 10위권이다.